분노를 넘어 슬픔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올곧게 이어왔다고 믿고 있는, 전노협의 비타협적인 투쟁정신을 수혈 받았다고 생각하는 민주노총에서, 자주성과 민주성, 도덕성을 그 생명줄 삼아 목숨을 이어온 민주노조운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근의 사태는 우리를 너무 부끄럽게 만듭니다. “도덕성이 운동의 족쇄가 돼서는 안 된다”는 망발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민주노총의 핵심간부를 보면서 차마 할 말을 잃었습니다.
멀리는 일제시대부터 가까이는 전노협까지, 뼈가 부서지고 피가 마르는 고통 속에서 노동운동을 해왔던 우리 선배들의 정신은 무엇이었습니까? 비록 가진 것은 없었지만, 적들의 탄압으로 삶은 피폐했지만 끝끝내 목숨처럼 지켜왔던 자주성, 민주성, 도덕성은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입니다. 그 원칙들이 여지없이 내동댕이쳐지고 있는 현실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권력이란 무상한 것입니다. 그건 붙잡고 있을수록 더 추해지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권력입니까? 개인의 영달을 위한 권력입니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노동운동을 합니까? 지금 하고 있는 작태가 진정으로 노동자와 조합원들을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반기 투쟁을 책임져야 한다구요? 손바닥으로 하늘이 가려집니까? 서천의 소가 웃을 일입니다. 현장으로부터, 국민들로부터 놀림감이 되고 있는 현 집행부가 하반기 투쟁을 책임 진다구요. 제발 억지 좀 부리지 마십시오.
간부하나가 비리를 저지르면 지도부가 총사퇴했던 것은 민주노조운동이 지켜온 견결한 원칙이고 약속이었습니다. 원칙을 저버리지 마십시오. 민주노조운동의 원칙들이 이렇게 하나하나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봇물 터지듯 노동운동의 위기가 온 것 아닙니까? 조직이 관료화되고 현장과 괴리되면서 현장 투쟁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난맥상에 빠진 것이 어디 하루 이틀의 문제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계속 간다면 민주노총은 그 존재의 의미조차 잃고 말 것입니다.
지금은 비상한 시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눈이 민주노총으로 쏠려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생채기가 덧나서 치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 것입니다. 더 이상 실망시키지 마십시오.
저희들은 문화활동가입니다. 사방팔방에서 짓쳐들어오는 자본문화에 대항해서, 우리들의 일상과 꿈자리마저 통제하려고 드는 저들에 맞서서 노동자문화의 싹을 키우고 지키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술을 무기로 언제나 투쟁의 최전선에서 동지들을 만나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는 우리들의 활동을 근본적으로 회의하게 만듭니다.
저희들은 결의합니다. 이번 사태를 책임지고 현 민주노총 집행부가 총사퇴하지 않는다면 이번 전국노동자대회의 문선활동은 물론, 민주노총 중앙의 모든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민주노조 운동의 원칙이 견결하게 복원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우리 노동문화활동가들도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며 또한 떳떳하고 당당하게 노동자 동지들 앞에 서겠습니다.